호조가와 우에스기가의 동맹.(이벤트) 양가는 간토의 패권을 놓고 오래 싸웠지만 이로해서 동맹성립. 호조씨네 아들하나를 우에스기에 양자로 보내다. 당주 우에스기 켄신의 양자로 이름을 우에스기 카케토라로 개명, 이 이름은 켄신의 옛날 이름이다. 인질 명목으로 온 녀석을 이리도 후대하다 켄신 사후에 피바람이 불게된다. 오다테의 란
강대한 미요시가와의 동맹, 미요시측의 제안이다. 인질이지만 혼인이라는 형식이 쌍방 모두 좋은법, 모리가의 당주 모리 모토나리와 미요시의 토모에와 혼인결정, 보다시피 저 처자는 14살이나 드셨다. 남편될 모토나리는 육십대 후반
모토나리 비전의 전법 [삼시훈]발동. 세화살의 교훈이라는 옛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다들 있을것이다. 실제로는 후세에 꾸며진 이야기지만 그래도...모리가의 상징과 같은 이야기
위키에서 삼시의 훈에 대해 긁어보면
어느날, 모토나리는 세 아들 다카모토, 모토하루, 다카카게를 불러 모아 한자루의 화살을 부러뜨리라고 명령하였다. 자식들은 어렵지 않게 부러뜨리자, 다음에는 세자루의 화살을 부러뜨리라고 명령하였지만, 자식들은 누구도 부러뜨릴 수 없었다. 모토나리는 한자루의 화살은 약하지만, 뭉치면 강하다는 일을 일깨우며, 삼형제에게 결속할 것을 강하게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세자루 화살의 일화다. 이 일이 모토나리의 임종전의 일이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왜냐하면, 이미 장남 다카모토는 죽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이라면, 청년기의 인간이 대나무 화살 3자루를 부러뜨릴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 의문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후세의 창작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떻게 보던 모리 가문의 가훈을 알기 쉽게 풀이한 이야기이고, 또, 모토나리가 남긴 14개조의 유훈과도 일맥상통하며, 모토나리 생전부터 친지들의 결속을 자식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덧붙여
히로시마 시를 연고로 하는
J리그 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팀명은 이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산은 일본어의 3을 의미하고 프레체는 이탈리아어로 화살을 의미한다.
꾸며진 이야기지만 모토나리의 의지만은 잘 보여주는 잘만든 이야기라는 결론이다.
대략 형세. 전국제일의 세력이고 배후가 찔릴 위험도 제거. 좌우간 이제 동진이다. 동쪽의 패자는 우에스기. 하지만 당면한 최대의 적은 혼간사 법사들. 스펙이 상당하다....
전시리즈 천하창세에서는 천하인이되거나 패자가 되거나 해 타이틀이 격상하면 나오던 화면. 오직 한가문밖에 못 개발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나보다. 고유기술. 모리가는....
해전에서 보너스, [배락화시]대략 항아리같은데다가 화약같은걸 채워 던지는 건데 무려 [절대효과]란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간사와 싸울때 완전 포위했지만 모리가의 수군에 대패하여 이시야마의 혼간사 세력은 좀더 노부나가의 골치를 썩게 했었다
중간점검. 지도는 보이는 대로. 기술개발현황이다.
영주 모토나리의 개인프로필. 76세의 고령. 아내는 파릇파릇한 이십대. 부럽...게임이지만.
위키를 보다가 일화 몇가지를 소개하는게 있어서 보니(두번째 이야기 빨간글자 주목)
- 죽기 오래전부터 모토나리는 후계자인 손자 모리 데루모토의 기량을 걱정하여,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후쿠하라 사다토시, 구치바 미치요시에게 손자 데루모토의 보좌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 모토나리를 지지해준 것은 가족이였다. 정실 오카타가 죽었지만, 계실과 측실에게서 우수한 자식들이 항상 모토나리를 받혀주였다. 모토나리는 71세가 될 때가지 아이를 가졌고, 자식들은 모토나리 사후에도 모리 가문을 지지하는 주축돌이였다.
- 전쟁, 책략, 암살, 매수, 혼인 등 온갖 방법을 구사한 희대의 모략가였고, 주고쿠 지방 일대를 장악한 《서국 수일의 센고쿠 다이묘》라는 평가가 있다.
- 이즈모 국의 아마고 쓰네히사, 아키 국의 모리 모토나리, 비젠 국의 우키타 나오이에는 주고쿠 지방 3대 모장으로 불린다.
- 철도창가중 제2집 산요 규슈편에서는 이쓰쿠시마 섬부분에서 모토나리를 절찬한 가사가 있다.
- 아버지 모리 히로모토, 형 모리 오키모토는 술독으로 요절하였기 때문에 모토나리는 술을 삼갔다고 한다. 훗날 손자 모리 데루모토에게 술을 삼가라고 조언을 하였고, 서찰이 현재 남아 있다.
- 현존하는 모토나리의 서찰로부터 그의 성격을 유추하면, 매우 불평이 많은 성격이였다.
프로필확인직후 모토나리 사망. 위키에서 모토나리의 말년에 대해 긁어보면
에이로쿠 3년 (1560년) 전반부터 모토나리는 기력이 약해, 쇼군 가문의 명의 마나세 도산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이 후 모토나리의 기력은 돌아왔고, 에이로쿠 10년 (1567년) 막내 아들 모리 히데카네의 탄생을 보았다. 겐키 원년 (1570년)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오다 노부나가는 대립하였고,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모리 가문도 오다 노부나가와 적대해 노부나가 포위망의 한축을 담당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모토나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실력을 인정하였고, 노부나가와 우호관계를 유지하여 포위망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겐키 2년 (1571년) 음력 6월 14일 요시다 고리야마 산성에서 임종을 맞이하였다. 향년 75세였다.
후계자는 모리 타카모토, 착해보인다